나는 정치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제가 이러니 제 처와 제 큰 딸 또한 그러리라 믿었습니다.
매스컴에서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들썩일 때도 나는 그저 예전에 보았던 청문회의 특별한 인물정도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지요.
그런데 어제 저녁 학교에서 돌아온 제 큰딸이 제 서재를 찾아 왔습니다.
부녀지간이지만 함부로 할 수 없을만큼 이미 다 커버린 딸이기에 입술을 꾸욱 다문 모습이 얼른 타인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빠! 세상의 진실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것이 제 딸이 내뱉은 첫 마디 였습니다.
20년째 이곳 부산의 고등학교 교단에 서는 저로서도 얼른 대답할 수 없는 난해한 질문이었지요.
쉬운 질문같았지만 정답이 없었습니다.
우선 나 부터도 부끄럽지만 진실을 모르고 살아왔으니까요.
제가 아빠한테서 배워야 하는 진리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두 번째 질문이었습니다.
나는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놈이 다 키워 놓으니까 이제 아비를 훈계하려 드는구나...]
딸을 향해 눈을 부라리려는 순간.
아빠! 지난 번(2000년 4월 13일로 기억합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기권하셨지요? 투표하러 가겠다는 엄마까지도 못가게 하셨구요.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의 행동은 진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도피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생각해 봤습니다.
그 때 저는 분명히 투표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내까지도 말렸지요.
제가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곳은 부산의 강서구였습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강서구는 바로 노무현 후보의 선거구였습니다.
그때 저는 노무현 고문에 대해 막연한 지지를 보내면서도 이곳 지역의 특성상 그분을 선택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교단에 서서 청년이 되어가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제가 그런 생각을 했을 정도이니 지금 생각해 보면 노무현 고문은 참으로 우인(友人)이 한사람도 없는 가운데 허허벌판에 서서 살을 에이는 고통과 공포를 겪었을 거라는, 고향에서 내 팽개쳐지는 처절함을 맛보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결국 여기에서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상대당의 경쟁자가 당선이 됐으니까요.
그때의 나는 [조금은 아깝구나] 하는 느낌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잊고 살아왔습니다.
딸의 도전적인 질문을 대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아빠! 민주당 광주 경선에서 노무현씨가 이겼대요. 아빠가 모른척 했던 그분을 광주에 사는 분들이 이기게 만들어 줬다구요. 오늘 학교 도서관에서도 온통 그 얘기 뿐이었어요. 우는 아이도 더러 있었구요. 정치와는 상관없이 아름답지 않으세요?
나는 몸을 떨었습니다.
딸의 정치적인 감각때문이 아니라 어느새 다 커버린 내 딸의 당당한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제가 한 말은...... [아빠가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얘기를 하자]
그 또한 딸의 눈에 비춰진 또다른 도피였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군요.
할 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서재를 나가는 딸의 뒷모습에서 나는... 나야말로 진정한 패배자구나... 하는 비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당당하게 진실과 진리를 말하는 딸.
입이 있어도 진실을 팽개쳤기 때문에 대답을 할 수 없는 부끄러운 아버지.
이것이 우리 부녀의 당시 모습이었습니다.
편하디 편한 시류와 약속된 기회를 단호히 버리고 자신의 철학과 이념. 바른 길을 옹골차게 걸어왔던 한 정치인을 나는 모른 척 했던 것입니다.
스스로 불의라는 철가면을 둘러 썼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조회를 하는데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합니다(나는 남고 3학년을 맡고 있습니다.)
선생님! 지금 온통 노무현씨 얘기가 판을 치는데 선생님께서 그 분에 대한 평가를 해 주시겠습니까?
공부는 잘 못하지만 품행이 단정하고 예의가 바른 아이였지요.
자신의 꿈이 일류 토지거래자라면서 장차 복덕방을 하기 위해 지금부터 중개사 공부를 하는 조금은 특별한 아이입니다.
나는 정확히 5분을 침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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