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1년만에 입학 20주년 송년의 밤을 열었습니다.
82학번, 관악산에서 3월의 칼바람이 얼굴을 때릴 때,
상기어린 표정으로 입학을 하였죠. 뭔가 해냈다는 뿌듯한 표정으로...
최고 인기학과 중 하나에 입학하여 시작한 대학 생활,
그러나, 입학한 지 정확히 4일만에 문무대 병영집체 훈련을 들어 갔습니다.
우리가 육사 들어 왔나 착각할 정도 세게 돌리드라구요.
그래도 그건 견딜만 했습니다.
허나,
학교 캠퍼스 잔디밭에 여기저기 사복경찰들이 리시버를 꽂고
우리들을 째려 볼 때,
자유로운 반토론회에 관악서의 정보과장이 뒤에서 지켜볼 때,
어눌한 말씨의 선배가 학교 안 깡통식당 앞에서
"학우여 !"를 외치고는 3명의 사복경찰에게 정확히 낭심을 잡힌 채
개같이 끌려갈 때,
우리는 절망했습니다.
그래, 잘 버티고 기득권 고이 살려 한국 주류가 되자
이렇게 주류의 꿈을 꾸면서 학교를 마쳤습니다.
대부분의 동기들이 그렇게 졸업한 후 한국 주류의 후보군이 되어
어제 모였던 거죠...
작년,재작년, 매년하던 송년의 밤에 나오던 대화 주제라고는,
주식얘기, m-a 정보, 여자 술집 얘기 등이 안주삼아 올랐고,
우리 동기들은 그렇게 15년의 사회생활 보내 왔죠.
그러나,
어제는 달랐습니다. 완전히 달랐습니다.
김민석이의 동기들인 우리 82학번, 민석이 이야기 나오면서, 후보단일화 얘기 나오면서,
급기야는 노무현후보 얘기 나오면서 봇물이 터졌습니다.
원칙과 상식,
한국주류를 바꾸어라, 제품(정책) 탓하지 말고 설비(정치) 들어 올때 검증 잘하자
송년의 밤을 보내고, 뒷풀이를 갔습니다.
장소 부터 달랐죠. 예전같으면 무교동 단란주점일텐데. 호프집으로 찾아 갔습니다.
진지하게, 처음으로 우리들의 입에서 베품에 대해 얘기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이미 많이 가졌고, 앞으로도 더 가질 것이다.
학교때의 농활, 봉천동 야학 교사, 가리봉동의 노동법 공부...
그때의 열정을 살리자. 이제는 묻어 두었던 희망을 되찾자.
미국에 대해서도 우리 40대, 486세대가 당당해지자.
우리들이 주류가 되었을 때, 원칙과 상식으로 당당하게 비지니스 하자
기부금을 모아서 그 기금으로 기부활동을 하자. 사회의 그늘에 있는 이웃에게 손을 내밀자
그날, 우리들은 스스로 유보시켰던 희망을 찾았습니다.
희망은 우리를 변화시켰습니다. 변화는 당당한 우리의 모습을 예견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두 상기된 표정으로, 뿌듯한 마음으로 귀가를 서둘렀습니다.
새벽 2시에 들어 온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의 방문을 빼꼼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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