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인천 연설문을 찬찬히 읽었다. 그리고 나는, 40이 가까운 나이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씨바.. 욕 나왔다.
울고 나서, 졸라 쪽팔려지기까지 했다. 불 다꺼진 한 밤중에 빤스 바람으로 모니터에 앉아 있는, 이제는 인격(?)이라는 아랫배까지 두둑하게 살이 찐 30대 후반 아저씨가 모니터 화면을 응시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이 아니 쪽팔리는 모습인가?
혹시 자식새끼들이 깨어나서 볼까봐 얼른 눈물을 훔치고 평상심을 찾으려고 했지만, 그 "감동"은 오래도록 나를 흔들었다.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담배와 라이타를 집어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그 날따라 별은 왜 그리도 밝고 맑던지..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미친놈 처럼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노사모, 우리모두, 대포, 오마이뉴스.. 하다못해 조선일보까지..
혹시라도 날 같이 쪽팔린 일을 당한 사람이 있을까 해서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땅의 수 많은 30대 40대가 노무현이란 사람때문에 그 나이에 모니터 마주보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개쪽을 당하고 있었던 거다.
나는 생각해 본다. 왜 노무현은 나를 울리나?
그가 무슨 문성근, 명계남씨 같은 "배우"인가? 아니다. "마당쇠"밖에는 못할 투박한 옆집 아저씨 얼굴로 배우는 무슨 배우..
나는 원래 노무현 지지자다. 그리고 내가 노무현을 지지하는 이유는 그가 "안티조선"에 앞장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뭐 이 글을 쓰면서 새삼스럽게 노무현을 지지하게 되었다는 둥의 어설픈 "작전"은 사양하겠다.
하지만, 노무현을 지지하면서도 그가 이렇게 나를 울리기까지 할 줄은 짐작도 못했다. 그런데..
한참을 생각한 후에야 나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노무현이 나를 울린 까닭은.. 아니 내가 노무현의 연설문을 읽고 눈물을 흘린 그 까닭은..
바로 "상식"이란 놈이었다는 것을..
그동안, 당연하고 당연한 그 "상식"이 철저하게 외면 당했던 사회. "비상식"이나 "몰상식"이 천연덕 스럽게 "주류"를 자청하던 사회. 그런 사회에서 노무현은 "상식"이 무었인가를 보여주었던 거다.
내가 아니 우리가, 정치가에게 바라는 것은 그리 거창한 것들이 아니다. 하루아침에 노동자 농민 천국되는 세상을 만들어 주라는 것도 아니요, 하루아침에 남북 통일을 이루어 달라는 것도 아니요, 하루아침에 국민 소득 10만불의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바로 "상식"이 통하는 사회.. 아니,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는 말 자체가 소용없는 사회.. 그것이었다.
그리고, 노무현은 그것을, 그 "가능성"을 보여 준 것이다.
나쁜 신문을 나쁜 신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상식". 출세보다는 "사랑"이 훨씬 고귀한 가치이다.. 라는 "상식". 잘못된 것을 "반대"할 줄 아는 "상식".
불행하게도 우리 정치인들은, 그동안 아무도 이런 "상식"의 행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데 노무현이 그걸 보여준 것이다.
그 당연하고도 당연한 그의 "행동"이 바로 나를 울게 만들었던 거다.
이렇게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된다면, 당연하게 노동자 농민들도 잘 사는 사회가 될 것이요, 당연하게 노동자와 사용자도 화합을 할 것이요, 당연하게 통일도 이루어 지리라.
주말마다 그의 연설중계 듣는게 새로운 낙이 된..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 선거에서 단 한표(?)의 주권도 행사할 수 없는, 또한 그래서 이번 겨울에 한표의 행사를 위해서 한국에 나가는 것을 신중하게 고려중인.. 배나온 30대 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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